행복한 영감자, 오랜지바다 기획이사 박명훈
"오랜지바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캠페인이어야 합니다."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50대 박명훈입니다. 해운대에서 아내와 함께 가죽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 가죽 공예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 검도를 했었거든요. 호구(상대방의 공격을 받아내는 갑옷)를 혼자서 수리해보려고 만지작거리다 그때 처음으로 가죽을 다뤄봤어요. '이걸로 재미난 걸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해서 시작했 습니다.


- 소개가 특이해요. '가장 행복한 50대'라니! 비결이 뭔가요?
저는 언제나 '돈을 벌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즐겁고 재미있는 일에서 생산적일 수 있도록 집중해요. 이런 선택을 이어가려면 어느 정도는 내려 놓아야하지요. 좋아하는 가죽 일을 계속 하고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기도 해요. 충분히 먹고 살만큼 큰 돈을 번 적도 있고 알거지가 될 만큼 다 잃은 적도 있어요. 그래도 돈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고 파트너와도 큰 갈등이 없었어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왜, 누군가와 연애를 할 때보면 '썸'을 탈 때가 제일 설레고 두근거리잖아요. 그 기분을 일에서도 느낄 수 있어요. 지금 제 아이들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찾아서 즐겁게 하고 있고요, 제 곁에 평생을 함께 할 좋은 파트너도 있고요. 스스로 즐거운 일들만 선택해서 하고 있으니 가장 행복할 수밖에요.


- 도대체 가죽 공예의 치명적인 매력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푹 빠지신건가요!
가죽의 매력은 끝이 없어요. 이게 피부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작업이잖아요. 모든 가죽이 촉감이 다 달라요. 연인과 손을 잡는 게 익숙해지듯이 작업하는 가죽이 내 손과 닿을수록 정이 들어요. 생명체의 어느 부위였던 가죽이 내 손을 거쳐 내일은 가방의 일부분이 되는 겁니다. 이 일을 할 때의 가장 큰 즐거움은 작업할 때 느끼는 촉감에서 와요. 주문이 많이 들어왔으니 빨리 처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고용하고 공장에서 제조한다? 더 많이 만들어 돈을 더 벌 수는 있겠지만 저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촉감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요. 오래 걸리더라도 양해를 구하고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주문 들어온 순서대로 만들어나갑니다. 내가 행복하게 만들면 완성된 가방도 행복해보여요. 정말로요.


- 재밌는 일을 이어가는 것도 수많은 영감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50년 동안 쌓인 버릇이 있어요. '습관화된 영감'이랄까요? 아주 무의식적이고 자연스럽게 주위로부터 영감을 받아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어요. 영감으로부터 발전한 내 생각을 내가 100퍼센트 믿어주는 것. 내가 믿지 않으면 내 생각을 어느 누구도 신뢰할 수 없어요. 항상 자신 있고 당당해야해요. 물론 내 생각을 작업으로 실현시켰을 때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평가를 내릴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렇구나'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생각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거예요. 우선 내 생각을 믿고 과감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 과정 중에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생각이 더 근사하게 발전할 수도 있어요. 거기서 또 영감을 얻고 선순환이 이어지는 것이지요.


- 오랜지바다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30년 전에 남소연 대표가 공방으로 찾아왔어요.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네야(노영선 이사)와 함께 와서는 광안리에 선물 가게를 만들건데 마을기업으로 같이 키워보자더군요. 재밌을 것 같았어요. 마침 예전부터 봐둔 건물이 나오게 되어서 과감히 잡았습니다. 혹시 왜 이름이 '오랜지바다'가 되었는지는 알고 있나요?


- 예전에 광안리가 오렌지족의 메카였다고 들었어요.
이성을 꼬셔볼라고 이 거리를 오토바이로 100바퀴나 돌던 사람도 있었어요. 엄청났죠.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여기는 오렌지족이 많으니 '오렌지바다군!'하고 생각했어요. 이게 그대로 이름이 되었죠. 나중에 '렌'보다는 '랜'이 예쁠 것 같아 철자를 바꾸었구요.


- 오랜지바다의 첫그림은 어땠어요?
어떤 일이든 '주제'를 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도 어렵습니다. 디지털 시대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것을 찾고 싶었어요. 누구나 부담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낙서였어요. 여행지에서 손글씨로 엽서에 마음껏 낙서를 하고 그것을 우체통에 넣는 캠페인을 벌이고 싶었습니다. 엽서 그리기는 초기 오랜지바다의 명확한 단 하나의 주제였고 지금은 이곳만의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점이 현재까지 오랜지바다가 마을기업으로써 잘 운영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제가 맡은 게 오랜지바다의 '인테리어'였어요. 쓸 수 있는 돈이 그다지 많지 않았지요. 나중에 장소가 바뀌더라도 오랜지바다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생각했습니다. 기존 건물의 인테리어를 하나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 대신 빈티지 가구들을 들였어요. 공간이 바뀌더라도 가구만 들고 나가면 되니까 오랜지바다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 선생님이 바라시는 오랜지바다는 어떤 곳인가요.
제가 시작부터 남소연 대표께 유일하게 주문한 것이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캠페인'이어야 한다고. 오랜지바다를 만든 사람들은 다들 각자의 일이 있어요. 이곳을 업으로 여기고 돈 벌 생각을 했으면 여기까지는 못 왔을 거예요. 10명이 똘똘 뭉쳐서 100만원씩 나눠 갖는 것보다 오랜지바다에서는 90명의 사람들을 더 불러와 다같이 10만원씩 나눠 갖는 쪽이 더 가치로운 것이지요. 누구든지 오랜지바다에 와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마음껏 그림엽서를 그리고 갈 수 있게끔 열어 놓는 것이 중요해요. 엽서와 관련한 재미있는 캠페인이 많을 겁니다. 팬시점처럼 가판대에 엽서만 주욱 꽂아놓고 판매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엽서로 시작된 문화가 더욱 견고하고 다채롭게 뻗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아, 며칠 전에 생겼어요. 빨리 할아버지가 되는 것! 얼른 손주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


│글·사진 박채린(chaelinjane@gmail.com)
박명훈
기획이사
여행지와 엽서, 우체통의 감성적 조합을 오랜지바다에 풀어 놓은 설계자, 영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