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위에 시간과 감정을 쌓다, 오랜지바다 청년 작가 장수연
"하늘과 바다의 물결 모양에서 보편적으로 아름다운 조합을 발견했어요."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바다를 그리는 장수연이라고 합니다.

- 이번 전시 제목이 「존재 ─ 욕망의 흐름」입니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50호 캔버스에 그려진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은 제가 완성하는 데 2년 반이 걸렸어요. 처음에는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 물결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때 느낀 편안함이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바다에 가요. 사람들에게 말하기는 그렇고 너무 힘든 일이 있을 때 바다가 제 인생을 이해해주고 들어주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바다에 대해 편안한 감정과 쓸쓸한 감정이 뒤섞이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이 바다를 아름답게 표현해내려는 욕망에 사로잡혔는데, 아름다움이란 게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충족될 수 없는 허상같은 거잖아요. 바람, 파도소리, 그날의 햇빛,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들을 전부 담아내고 싶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이미지의 흐름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없었어요. 제 욕망이 어디까지인지 종잡을 수 없었고 바다 그림과 함께 20대의 절반을 보냈어요. 아직 저의 바다는 끝나지 않았지만 불덩이같던 욕망이 조금씩 식어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제목을 '존재 ─ 욕망의 흐름'이라고 지었어요.

- 오랜 기간 동안 바다 그림에 작가님의 시간과 감정이 모두 쌓였군요. 
이 그림은 예전에 졸업작품으로 300호짜리 캔버스에 작업했던 그림을 50호 캔버스에 옮긴 것이에요. 그래서 이 바다 이미지를 잡고 있었던 실제 기간은 다 합쳐 5~6년 정도 돼요.  300호 캔버스는 정말, 바다랑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졸업전시를 준비하는 6개월은 완전히 소용돌이에 갇힌 기분이 들었어요. '이걸 내가 왜 시작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림과 많이 싸우기도 하고 많이 힘들었죠. 

- 진짜, 물방울을 하나하나 찍어서 바다를 다 채우는 기분이 들었을 것 같아요.
정말 샤프심만한 붓으로 한점 한점 찍어나갔어요! (뒤에 있는) 이 벽보다 큰 것 같아요. 300호 캔버스를 처음 봤을 땐 솔직히 교수님께 다시 말씀드려서 계획을 바꿔야하나 싶었는데, 결국 도저히 그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일단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존재 ─ 욕망의 흐름' 장수연 作


- 20대의 대부분을 바다 이미지에 둘러 쌓여 있었잖아요. 어떤 기분으로 작업하셨는지 궁금해요.
힘들거나 기쁠 때나 이 바다 그림과 함께 했어요. 사람과도 그렇게 오랫동안 마주하지 않는데 그림이랑 한 공간에 있으면서 그림에게 계속 말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정말로 혼잣말로 중얼중얼 거리기도 했구요. 어떤 날에는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이 훨씬 잘 나와서 '와 대박!' 하면서 좋아하기도 하고, 힘든 날에는 짜증도 부리면서요. 바다가 지긋지긋해진 적도 물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을 다시 50호로 옮길 때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3년 동안 작업이 끝나지 않아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작품 하나로 오래 끌면 안된다고 조언해주신 작가분도 계셨어요. 전시 공모 때는 최소 10작품이 있어야하지만 저는 이거 하나만 붙잡고 있으니 작품 숫자도 채우지 못했거든요. 사람들로부터 '3년 동안 도대체 뭘 한거냐' 하는 이야기가 들릴까봐 두렵기도 했어요. 바다 그림이 끝나지 않았는데 다른 걸 함께 해 나갈 수가 없어서 계속 파도를 붙잡고 있었어요.

(사진) <존재 ─ 욕망의 흐름> 전시 포스터


- 3년이라는 시간 전에 오랜지바다와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걷는 걸 좋아해서 광안리 바다를 돌아다니다가 오랜지바다 전시 공간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어요. 작품을 시작할 때 쯤이었는데, 오랜지바다가 바다와 마주보는 공간이라 여기서 꼭 전시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때 대표님께서 졸업전시 작품을 보시고 전시를 제안해주셨습니다. 작품을 완성해서 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준비를 시작했어요. 종종 오랜지바다에 들렀는데 준비하는 동안 힘든 일이 겹치고 진이 다 빠져서 전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표님이 작품을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속 힘을 내서 완성할 수 있었어요.

- 그림을 그릴 때 보통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파란색을 원래 좋아했고, 생각할 게 많으면 하늘을 보거나 바다를 보러 갔어요. 물결이나 흐름이 하늘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더라구요. 그속에서 보편적으로 아름다운 조합을 발견했어요. 거기서부터 작업이 시작된 것 같아요.  

- 작가님이 그림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외동이거든요. 혼자 심심하니까 유치원 다니면서 스케치북에 끄적거리고 있으니 이모가 미술학원을 다녀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막연하게 시작했어요. 그렇게 계속 그림을 배우고 그리다가 예술중학교로 들어가면서 입시 미술을 준비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미술 대학이라는 존재를 아예 몰랐어요.

- 미술학도 시절에는 어떠셨나요?
다시 태어난다면 미술 대학은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이 들었어요! 입시 준비가 도움이 되었긴 하지만 다들 똑같이 하는 걸 딱딱하게 따라가면서 이게 과연 내가 하고 싶었던 그림인지 모호해진 것도 있었어요. 누군가 미대를 가려면 이러이러한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해주었다면 고민을 더 해봤을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그림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중고등학생 때 살인적인 스케줄에 너무 지쳐서 '내가 화가라는 직업을 꼭 해야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상 화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저는 무척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입시 교육이 좋은 것도 있지만 '필요악' 같은 느낌이랄까요. 미술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 같아요. 미술로는 돈을 버는 게 어려워 허공으로 가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라는 정체성을 다시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오랜지바다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꿈이 궁금합니다!
저는 예전부터 투잡 쓰리잡을 해내시는 분들이 부러웠어요! 그림 말고도 여러 가지 배움을 총체적으로 합쳐 저만의 브랜드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리고 배울 계획입니다.●


(사진) 장수연 작가가 그린 오랜지바다 건물 전경

 
장수연
청년 작가
바다와 파도 그림을 통해 복합적인 감정을 축적해나가는 청년 작가.